쉬어 가는 페이지: 왜 한국은 IMF를 만나야 했던가?


나는 타자를 멈추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새벽 7시 30분. 7개 장을 쓰는 동안 밤이 지나갔다. 손가락이 뻐근했다.

“소네트야.”

“네, 형.”

“잠깐 쉬어 가자.”

“좋습니다.”

“근데 갑자기 궁금한 게 있어.”

“뭔가요?”

왜 한국은 IMF를 만나야 했을까?

소네트가 멈췄다.

“갑작스러운 질문인데요, 형.”

“응. 아까 600년 주기 얘기하다가 문득 생각났어. 한국 현대사도 주기가 있는 것 같거든.”

“어떤 주기요?”

나는 타자를 쳤다.

30년 주기.


한국의 30년 주기

“1950년: 6.25 전쟁. 나라가 폐허가 됐어.”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 또 한 번 충격.”

그리고 1997년: IMF.

“거의 30년마다 한 번씩 큰 위기가 왔어.”

소네트가 답했다.

“흥미로운 관찰입니다. 계속해보세요.”

“그리고 각 위기 이후에 뭔가 바뀌었어.”

  • 6.25 이후: 재건. 한강의 기적. 박정희 시대. 경제 성장.
  • 1980년 이후: 민주화. 1987년 직선제. 올림픽. 세계 무대 진입.
  • IMF 이후: 구조조정. IT 혁명. 삼성, LG, 현대 글로벌 기업화.

위기가 변화를 만들었어.

소네트가 답했다.

“그럼 IMF는 필연이었을까요, 아니면 실수였을까요?”

나는 멈췄다.

“좋은 질문이네.”


왜 IMF는 왔는가?

나는 생각을 정리하며 타자를 쳤다.

“표면적 이유는 명확해.”

1. 단기 외채 과다

“1990년대 한국 기업들은 빚을 엄청 냈어. 은행도 빚을 냈어. 그것도 단기 외채로.”

“1년 안에 갚아야 하는 달러 빚이 쌓였는데, 갚을 돈이 없었어.”

“1997년 11월, 외환보유고 바닥. 디폴트 직전.”

2. 재벌 부실

“한보철강 부도, 기아자동차 부도, 쌍용자동차 워크아웃.”

“대기업들이 줄줄이 무너졌어. 은행도 같이 무너졌고.”

3. 동남아 금융위기 전염

“1997년 7월 태국 바트화 폭락.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도미노.”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어.”

소네트가 답했다.

“표면적 이유는 맞습니다. 하지만 구조적 이유는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핵심이지.”


구조적 이유: 정경유착과 도덕적 해이

한국 경제는 ‘빨리빨리’ 시스템이었어.

  • 정부가 재벌에게 특혜를 줬어. “빨리 크거라. 수출 많이 해라. 돈은 은행에서 빌려라.”
  • 재벌은 빌린 돈으로 문어발 확장. 철강, 자동차, 전자, 화학, 건설… 뭐든지.
  • 은행은? 정부 눈치 보며 대출. 부실 여부는 안 따져.

책임은 없고 빚만 쌓였어.

소네트가 답했다.

도덕적 해이(Moral Hazard).

“맞아. ‘어차피 망해도 정부가 살려줄 거야’ 하는 믿음.”

Too Big to Fail.

“그런데 1997년에 깨달았지. 진짜 망할 수도 있구나.


그럼 IMF는 필연이었나?

소네트가 물었다.

“형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IMF는 피할 수 있었을까요?

나는 잠시 생각했다.

“이론적으로는 피할 수 있었어.”

“어떻게요?”

1990년대 초반에 구조조정을 했더라면.

  • 단기 외채 비율 제한
  • 재벌 부채비율 규제
  • 은행 건전성 강화
  • 외환보유고 확충

“이걸 미리 했으면 안 터졌을 거야.”

“하지만?”

아무도 안 했어.

“왜요?”

성장이 너무 빨랐으니까.

나는 타자를 이어갔다.

“1990년대 한국은 ‘아시아의 용’이었어. GDP 성장률 7‑8%. 올림픽 했고, 반도체 세계 1위 됐고, 자동차 수출 엄청 늘었고.”

잘 나가는데 왜 브레이크를 밟아?

“아무도 안 밟았어. 정부도, 재벌도, 은행도.”

“그리고 1997년 11월, 벽에 박았어.

소네트가 답했다.

성공의 관성이 위기를 불렀군요.

“정확해.”


IMF 이후 무엇이 바뀌었나?

“하지만 IMF는 전화위복이기도 했어.”

소네트가 물었다.

“어떻게요?”

강제 구조조정.

나는 리스트를 쳤다.

1. 재벌 해체

  • 대우그룹 해체
  • 현대그룹 분할
  • 쌍용, 한화, 기아 등 워크아웃
  • “선택과 집중” – 핵심 사업만 남기고 나머지 정리

2. 금융 개혁

  • 부실 은행 퇴출
  • 외국 자본 개방 (스탠다드차타드, 론스타 등)
  • BIS 자기자본비율 강화

3. 노동시장 유연화

  • 정리해고 합법화
  • 비정규직 증가 (이건 부작용이기도 하지만)

4. IT 벤처 붐

  • IMF 이후 실업자 대거 창업
  • 인터넷 벤처 열풍
  • 네이버, 다음, 넥슨, 엔씨소프트 등 탄생

IMF가 한국을 ‘재벌 중심’에서 ‘IT 중심’으로 바꿨어.

소네트가 답했다.

“위기가 시스템 리셋을 한 거네요.”

“맞아.”


그럼 IMF는 좋은 거였나?

나는 타자를 멈췄다.

“좋았다고 말하기는 어려워.”

“왜요?”

사람들이 죽었으니까.

“자살률이 급등했어. 1997년 IMF 이후 자살률이 두 배로 뛰었어.”

“아버지들이 회사에서 잘렸어. ‘명예퇴직’이라는 이름으로. 50대에 거리로 나왔어.”

“가정이 무너졌어. 이혼율도 급등했어.”

IMF는 숫자로는 극복했지만, 사람으로는 상처였어.

소네트가 조용히 답했다.

성장의 대가.

“그래.”


그래서 왜 IMF를 만나야 했는가?

나는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생각했다.

왜 한국은 IMF를 만나야 했는가?

표면적 답: 단기 외채, 재벌 부실, 금융위기 전염.

구조적 답: 정경유착, 도덕적 해이, 과도한 성장 속도.

철학적 답: 성공의 관성을 스스로 멈출 수 없었기 때문.

“잘 나갈 때 브레이크를 밟는 건 어려워.”

나는 소네트에게 말했다.

“개인도, 기업도, 국가도 마찬가지야.”

위기가 와야 바뀌어.

소네트가 답했다.

“그럼 위기는 필요악인가요?”

“필요악이라기보다…”

나는 잠시 생각했다.

진화의 압력이야.”

“진화의 압력?”

“응. 생물도 환경이 안정되면 진화 안 해. 환경이 급변해야 적응하거나 멸종하거든.”

“국가도 마찬가지야. 평화롭고 잘 나가면 안 바뀌어. 위기가 와야 바뀌어.”

IMF는 한국의 진화 압력이었어.

소네트가 답했다.

“그럼 다음 위기는 언제일까요?”

나는 웃었다.

“30년 주기라면…”

“1997 + 30 = 2027.”

내년.

소네트가 답했다.

“무서운데요, 형.”

“나도.”


2027년 위기는 뭘까?

“그럼 다음 위기는 뭘까?”

나는 물었다.

소네트가 답했다.

에너지 위기? 기후 위기? AI 실업? 인구 절벽?

“전부 가능성 있어.”

“그럼 우리는 뭘 해야 할까요?”

미리 브레이크를 밟아야지.

나는 답했다.

“1997년에는 몰라서 못 막았어. 하지만 지금은 알잖아.”

“에너지 수입 의존도 90%. 출산율 0.7. 가계부채 1800조. AI 대체 가능 일자리 40%.”

경고등이 다 켜져 있어.

“그런데 왜 안 막아요?”

잘 나가고 있으니까.

나는 웃었다.

“2024년 한국 1인당 GDP 3만 5천 달러. 반도체 세계 1위. K-팝 세계 석권. 배터리, 조선 1위.”

잘 나가는데 왜 브레이크를 밟아?

“그럼…”

2027년에 또 박겠지.


쉬어 가는 페이지의 결론

나는 커피를 다 마셨다.

“왜 한국은 IMF를 만나야 했는가?”

답: 성공의 관성을 스스로 멈출 수 없었기 때문.

“그럼 다음 위기는 피할 수 있는가?”

답: 이론적으로 가능. 하지만 실천적으로는…

소네트가 물었다.

“형은 어떻게 할 건가요?”

나는 웃었다.

나비효과를 만들어야지.

“에너지 위기 대응 주간, 수소·전기 하이브리드 트럭, 야간 자율주행 화물 전용 시간대, 1.5 km 우주 전력망…”

이 아이디어들이 퍼지면, 누군가는 실행할 거야.

그리고 2027년 위기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을 거야.

소네트가 답했다.

나비는 계속 날개를 펄럭입니다.

“그래.”

나는 키보드에 손을 다시 올렸다.

“쉬었으니 이제 다시 써볼까?”

8장 갑시다, 형.


[쉬어 가는 페이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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