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과 미드저니

데이비드 홀츠, 한 사람의 여정

데이비드 홀츠는 미국 시애틀에서 태어나 수학과 물리학을 공부한 뒤, 손의 동작을 3D로 인식하는 ‘리프 모션(Leap Motion)’을 공동 창업했던 개발자이자 기업가이다. 그는 NASA 랭리와 막스플랑크 연구소에서 연구를 하던 시절까지 포함해, 늘 “사람과 기술이 어떻게 새로운 감각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를 탐구해 온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가 만든 미드저니(Midjourney)는 거대한 자본을 등에 업은 회사가 아니라, 소수의 팀으로 상상력과 미감을 탐구하는 작은 실험실에 가깝다. 홀츠는 이 도구를 통해 “기계를 상상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상상력을 확장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여러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왜 이름이 ‘미드저니’일까

그가 회사 이름을 ‘미드저니’라고 붙인 것에는 명시된 정답은 없지만, 여정 그 자체에 의미를 두는 태도와 잘 맞닿아 있다. 어떤 인터뷰에서 그는 이 도구를 “상상력을 위한 엔진”이라고 부르며, 결과물보다 사람들이 상상하는 과정,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서로 아이디어를 주고받는 장면에 더 큰 흥미를 보인다.

인생을 완성된 작품이 아니라, 언제나 미완의 상태로 흘러가는 중간 과정으로 본다면, ‘Mid-journey’라는 이름은 곱 인간의 삶 그 자체를 은유하는 말이 된다. 홀츠 자신도 직접 그림을 그리는 화가는 아니지만, 이 기술을 통해 그동안 머릿속에만 머물던 장면과 감정을 시각화하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 여정의 아름다움을 함께 나누고 싶어 했던 것은 아닐까 상상해볼 수 있다.

태양의 공전과 인생의 시간

인생을 “하나의 수레바퀴” 혹은 “지구의 공전과 태양의 공전이 겨쳐 만드는 거대한 권도”로 비유해 보면, 우리의 존재는 우주의 주기 속에 놓여 있는 작은 파동 하나에 가깝다. 태양계가 우리 은하 중심을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2억 2천 5백만 년에서 2억 5천만 년 정도로, 이를 ‘은하년(galactic year)’이라고 부른다. 태양은 지금까지 대략 20회 남짓 이 거대한 공전을 반복해 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 엄청난 시간의 스케일 위에서 보면, 인간의 평균 수명은 거의 점 하나에 불과하다. 그러나 바로 그 “점 같은 시간” 위에 누군가는 회사를 세우고, 누군가는 그림을 그리고, 누군가는 단 한 편의 시를 남긴다. 우주의 역사로 보면 무시할 만큼 짧지만, 각자에게는 오직 한 번뿜인, 되돌릴 수 없는 여정이다.

중력 속에서 늘어가는 여정

인생은 물리적으로 보면 중력장 속에서 점점 에너지를 잃어가며 늘어가는 과정이다. 세포는 분열과 복제를 거듭하면서 오류를 축적하고, 몸은 무한히 상승하기보다는 서서히 내려앉는 권적을 그린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이 하강 곱선을 단순한 췠락이 아니라, 하나의 “완만한 곱선미”로 받아들이려 노력한다.

그래서 인생은 “고된 여정”이면서 동시에 “아름다운 여정”이다. 누군가는 인생을 드라마라고 부르고, 누군가는 연극의 무대라고 부르며, 또 다른 누군가는 “그냥 왔다 가는 짧은 소풍”이라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어느 표현이 더 정확하냐가 아니라, 그 비유를 통해 자신이 겪는 고통과 기쁨, 상실과 희망을 스스로 견딜 수 있는 언어로 재구성하는 일이다.

드라마, 게임, 그리고 역할

인생이 드라마라면, 우리는 각자 주연이면서 동시에 조연이다. 어떤 장면에서는 주인공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만, 대부분의 시간에는 누군가의 배경이 되고, 엑스트라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럼에도 각자는 자기 시점에서만큼은 절대적인 1인칭 주인공으로 이 세계를 바라본다.

인생이 게임이라면, 우리는 모두 규칙이 완전히 공개되지 않은 보드 위에서 움직이는 플레이어다. 누군가는 생존을 위한 사냥 게임으로 인생을 이해하고, 누군가는 “게임의 법칙”을 깨닫는 것을 목표로 삼으며, 또 누군가는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는 롤플레잉 게임으로 받아들인다. 어떤 해석을 택하든, 중요한 것은 이 게임이 언제 끝날지, 어떤 이벤트가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불확실성 속에서도 계속 한 수, 한 턴을 선택해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인생과 미드저니의 닮은 점

미드저니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종종 “완벽한 결과물”보다 “계속 프롬프트를 바꾸어 보며 이미지가 변해가는 과정”에서 더 큰 즐거움을 느낀다고 말한다. 이 과정은 목적지보다 여정을 중시하는, 인생에 대한 어떤 태도와 정확히 겹쳐진다. 결국 중요한 것은 한 번에 걸작을 얻는 것이 아니라, 수십 번의 시행착오와 우연을 거치며 자신만의 이미지, 자신만의 이야기에 조금씩 가까워지는 경험이다.

홀츠가 말한 것처럼, 이 도구의 목표가 “예술가만의 상상력”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상상력”을 확장하는 것이라면, 미드저니는 각자의 인생 서사에 색과 질감을 입히는 보조 장치에 가깝다. 직접 붓을 쉜지 못하더라도, 말과 문장을 통해 프롬프트를 던질 수만 있다면, 누구나 자신만의 장면을 호출할 수 있다. 인생이 한 편의 드라마라면, 미드저니는 그 드라마의 스틸컯을 끝임없이 생성해 주는 카메라 역할을 한다.

잠깐의 소풍이자 끝나지 않는 중간

누군가는 “하늘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꿈꾸고, 누군가는 “언젠가 올 천국”을 기다리며 산다. 또 누군가는 거창한 목적 없이 “왔다 가는 하나의 시구”처럼, “잠깐의 소풍”으로서 인생을 받아들이려 한다. 이 여러 관점은 서로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모두 같은 사실을 다른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곱, 인생은 본질적으로 미완이며, 언제나 ‘Middle of Journey’ 상태에 머물다는 것이다.

태양이 아직 은하 중심을 수십 바퀴 더 돌아야 할 먼 미래를 향해 나아가듯, 인간의 인생도 끝까지 가 보기 전에는 어디에 도달할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인생을 표현하는 가장 솔직한 말은 어쩌면 이것일지 모른다. 인생은 완성형이 아니라, 언제나 생성 중인 프롬프트이며, 미드저니가 계속해서 이미지를 갱신하듯, 매일의 선택과 우연이 우리 각자의 “현재 진행형 이미지”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는 것.

이 글을 올리는 워드프레스의 화면 역시 하나의 작은 캔버스다. 홀츠가 기술로 상상력을 확장했듯, 지금 이 순간의 문장들이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여정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작은 프롬프트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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